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타리 쇼크 (문단 편집) == 요약 == * 아타리에서 1977년에 [[아타리 2600]]을 발매했지만 잘 팔리지 않았다. * 아타리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기점으로 1980년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 이윽고 비슷한 게임기와 홈 컴퓨터가 계속 발매되고, 수많은 회사[* 게임 회사 뿐만 아니라 식품 회사나 유통 회사등.]에서 똑같은 게임을 각 기종으로 발매하여 시장은 금방 포화상태가 되었고 소비자의 불만은 높아졌다. * 아타리에서는 [[서드파티]]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았으나, 통제할 수도 없었다. * 게임 회사, 소매상, 증권 시장 등, 시장 참여자들의 낙관 속에 경영진들의 누적된 판단 실패로 회사의 재정을 맞추기 위해 게임 카트리지를 미친 듯이 찍어냈다. * 공급 과잉으로 게임이 반품되고, 게임 제작사들이 망해 반품마저 안 되는 게임이 헐값으로 팔리자, 소비자들은 제값을 치르지 않게 되었다. 위에서 계속 설명했듯, 아타리 쇼크는 세간에 알려진 '소프트웨어의 질적 하락과 저질 게임 범람으로 인한 소비자 외면' 뿐 아니라 '''급속도로 성장한 시장을 통제하지 못하고 [[공급자]] 스스로가 자멸하게 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이후 일본의 세가 vs 닌텐도 혹은 vs 소니와 같은 양강 혹은 2~3강 체제가 아닌 아타리 이외에도 수많은 가정용 게임기가 넘쳐났고 덤으로 개인용 컴퓨터 시장과도 경쟁을 해야 했음에도 스스로가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낙관만 하다가 큰 실수를 연발하게 된 것이 거대하게 터져버린 것이다. 위의 팩맨 주문건수와 같은 사례는 이후 일본에서도 쉽게 재현이 됐는데, 인기 소프트의 최신작이 발매된다고 했을 때 동네에 몇 군대씩이나 있는 작은 소매점에서 들어오는 주문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면 모든 주문이 500만개 정도가 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나마 일본이 터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슈퍼)패미컴 소프트의 제조비가 부담스럽고 제조에도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주문이 들어오는대로 찍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고, 도매상이 소매상을 컨트롤 하기 위해 물건을 달라는 대로 주지 않았기 때문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91년 당시 게임 유통, 특히 닌텐도 프랜차이즈 시스템과 관련된 참고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tOULjVjdJqM|#]] 수백만엔이라는 큰 돈을 들여 프랜차이즈 가입하고 지정한 만큼의 공간을 확보하고 전용 인테리어까지 해야했지만 젤다의 전설 같은 게임마저 팔리지도 않는데 물건은 계속해서 들어오고, 다른 판매점에서는 물량을 빨리 털기위해 아예 첫날부터 가격을 할인해서 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타리 쇼크는 경제학 뿐만 아니라 경영학, 응용윤리학에도 큰 의미가 있다. 경제학에는 시장에 풀린 상품, 그것도 [[대체재]]가 풍부한 것들의 전체적인 품질이 지나치게 떨어지면 시장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아주 좋은 사례가 되어 주었고, 경영학과 응용윤리학에는 각각 '지속 가능한 경영'과 '윤리경영'의 경각심을 일깨워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16비트 시절까지는 게임 개발의 고정비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게임 산업은 고작 2~3명의 직원만으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가져오는 꿈의 산업 정도로 인식되었을 정도. 지금처럼 500명 이상이 5년 이상 투입되어야 하는 세상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온전히 자신의 시장을 잘못 판단하고 1200만개나 물량을 찍어내는 판단(이는 1981년 총 판매량의 1/3 정도 해당되는 사항)이 정신나간 것이다. 망하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 리뷰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아서 소비자의 판단을 흐렸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틀린 얘기이다. 왜냐하면 아타리의 성공으로 인해 1980년대부터 여러 비디오 게임지가 창간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컴퓨터 게이밍 월드'도 1981년에 창간되었다. 그러나 '''리뷰할 게임도, 게임 회사도 사라져 버린 바람에''' 1984년 즈음에 대다수의 게임 잡지가 폐간하게 됐다. 컴퓨터 게이밍 월드 1988년 8월호에 설립자 '러셀 사이프'가 이에 대한 회고록을 남겼는데, 1984년 겨울까지 몇 개의 잡지만 살아남았고, 1985년 여름에는 자신들이 발행했던 컴퓨터 게이밍 월드가 유일한 풀 컬러 게임 잡지였다고 한다. 이를 통해 게임 잡지들은 비디오 게임이 인기를 끌면서부터 다양하게 발간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